"주류 미디어 밖 새 이야기 발굴 세대별 여성들 한데 묶을 거예요"

[예술인플러스] 광주여성영화제 김채희 집행위원장
시작부터 현재까지 영화제 함께 해온 유일한 인물
영상창작단 틈서 다큐멘터리 ‘우리텃밭’ 연출 이력
‘제11회 영화제’ 10월10일 개막…경쟁 부문 신설도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0년 10월 04일(일) 18:06
2020년 10월호 제89호=정채경 기자)‘나 여기 있어·너의 손을 잡아줄게·그거 기억하니·내 이름을 불러줘·눈물너머·꽃은 핀다·바람이 분다 같이 가자·지금, 페밍아웃·이제 우리가 말한다·춤추며 가자’
매년 한해를 함축하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존재를 알린 ‘광주여성영화제’가 2010년 첫 발을 내딛은 뒤 지난해 10주년을 맞았다. 영화 불모지였던 지역에서 매년 여성주의적 관점의 핫 이슈를 모두 담아내는 것은 물론, 이를 공론화하는 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영화제는 10년 동안 관객 수 증가에 따른 상영관 확대와 성평등한 사회 분위기를 환기하는 등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10년 간 천천히, 그러면서도 꾸준히 성장해온 것이다. 올해 하반기에 열릴 예정인 11회째 영화제는 지난 10년간의 성장을 발판삼아 나아갈 방향을 정립해나간다. 새롭게 첫발을 내딛는 해인 셈이다. 제11회 영화제가 유난히 값진 이유다.
이처럼 소중한 영화제의 중심에는 김채희 광주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있다. 영화제 시작 당시부터 지금까지 함께해온 유일한 인물이다.
어릴 적부터 극장을 좋아해 영화 감독을 꿈꿨다는 김 위원장은 어두컴컴한 극장의 분위기에 심신의 안정감을 느꼈다고 한다. 여성단체에서 활동해온 그는 광고 회사를 다니다 쉬고 있을 때 ‘2008여성미디어활동가 양성교육’에 참여하면서 영상을 접하게 된다. 이 과정을 통해 영상 촬영 및 제작을 경험하게 된다. 당시 15명이 함께 교육을 들었는데 꾸준히 영상을 해보자는 의견이 모아져 이들 몇몇과 ‘영상창작단 틈’을 결성했다. ‘틈틈이 모여 틈나는 대로 사회의 틈을 메꿔나가자’는 의미로, 주류 미디어에서 다루지 않는 것들을 다뤄보기로 입을 맞췄다. 구성원들이 대부분 전업주부와 비정규직 30~40대 여성들이어서 이들의 앵글은 자연스레 주변의 소외된 여성들을 비추게 된다.
이들의 첫 작품은 농촌 여성의 현실을 그린 ‘수자씨와 순애씨’다. 이어 농촌마을 여성의 도농간 꾸러미 직거래를 다룬 ‘우리텃밭’을 제작, 김 위원장이 연출을 맡기도 했다. 두 작품은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주관 ‘2009시민영상페스티벌’과 광주·부산 시청자 미디어센터 주관 ‘2010시민영상페스티벌’에서 각각 시민 미디어상과 최우
수상을 수상했다.
당시 받은 최우수상 상금 500만원으로 상영회를 열고 싶었다는 그는 구성원들과 논의 끝에 큰 극장에서 여러 사람들이 함께볼 수 있는 영화제를 추진하기로 했다. 인천과 제주 등 타 지역과 달리 광주는 여성영화제가 없던 시기여서 여성을 가치로 내건 영화제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여성영화제를 한다고 했을 때 대부분이 ‘왜 힘든 길을 가려고 하나’라는 걱정을 많이 했죠. 잘해보라는 격려도 가끔 있었구요. 틈 끼리만 했으면 못했을 텐데, 당시 여성센터장이 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아주셔서 가능했죠."
영화는 어떻게 섭외하고, 영화제 홍보는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 총 예산은 얼마나 투입해야 하는지 등 영화제를 처음 치르는 것이어서 아무것도 몰랐고 한다. 인천여성영화제 사무국장을 초청해 이런 저런 조언을 구한 뒤,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터득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무등산 등산로와 대인예술시장, 광주프린지페스티벌 등 사람이 몰리는 곳은 어디든지 찾아가 홍보에 열을 올렸던 당시를 떠올리며 ‘맨땅에 헤딩’이었다고 소회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올린 첫 영화제의 반응은 성공적이었다.
집에서, 직장에서 삶을 살아내는 평범한 여성들을 조명한 첫회의 관객 대부분은 주부들이었고, 사무국은 이들이 아이를 데려와 영화를 볼 수 있도록 놀이방을 운영하기도 했다.
영화제를 준비하며 격년제로 진행할까 잠깐 고민을 했지만, 예상밖의 호응으로 자신감을 얻어 지속적으로 열자고 다짐하는 계기가 됐다는 설명이다. 이어 영화제 기간 뿐만 아니라 일상적으로 관객들을 만날 수 있는 찾아가는 상영회를 진행하는 한편, 영화제 후원회원들을 조직, 지역의 여러 도움으로 영화제를 치렀다. 또 내실을 다지기 위해 여성주의와 여성영화에 대한 학습과 토론을 병행했다. 3회 영화제부터는 여성센터와 영화제를 분리, 별도로 단체를 등록했다. 이전까지 조명되지 않았던 여성들의 사회 참여율을 높여온 공로를 인정받아 4회때 광주시로부터 첫 예산을 지원 받았으며, 해마다 꾸준히 증액되고 있다.
1 제10회 영화제 폐막을 함께 한 관객들 2 감독과의 대화 진행 모습 3 지역여성영화제 네트워크 간담회

또 8회때부터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지원을 받기 시작, 지역여성영화제 중에서는 처음으로 영진위의 인정을 받기도 했다. 이는 이전까지 여성영화제의 지원을 암묵적으로 피해온 영진위의 ‘유리천장’을 광주여성영화제가 깬 것이어서 의미가 크다.
"10년이란 세월 동안 사회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어요. 초창기처럼 아이 보느라 문화생활을 즐기지 못하는 여성들을 찾기 힘들죠. 예전엔 단편영화 틀면 관객이 없었는 데, 매니아층이 많아져 요즘은 관객들이 많구요. 30~40대 주부들에서 점차 전 연령층으로 확대가 돼 10~30대들도 많아요.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젠더 문제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모이고 있죠."
초창기는 여성주의와 젠더 문제에 대해 관심이 없던 시기여서 여성주의 문화 확산과 성평등에 대한 의제들을 얘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목표였다. 그 뒤에는 여성의 사회적 위치와 미투 등 사회 분위기를 타 영화제가 함께 성장하며, 여성 감독을 지원해 여성영화가 만들어지는 기반을 다지고 있다.
‘관객이야기공모전’을 통해 이야기를 수집, 당선작을 그 다음해에 여성감독에 보여주고 제작을 지원했다. 감독 지원으로 탄생한 작품은 김경신 감독의 입봉작 ‘결혼별곡’(2016)과 허지은 감독의 ‘돌아가는 길’(2017), 김소영 감독의 첫 작품인 ‘엄마가 60살이 되기 전에’(2018)다. 지난해에는 ‘어쩌다 10년’이라는 영화제 1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감독지원은 사실 지역에 여성감독이 없었기 때문에 영화제작을 지원을 한 것이었는데, 지역에서도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데다 시에서 영화제작지원도 하고 있어 포맷을 바꾸기 위해 고민 중이다. 직접 지원보다는 지역 제작지원이 늘게끔, 여성 감독들과 영화인들의 네트워킹을 강화하는 한편, 성평등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제11회 영화제는 오는 10월10일부터 15일까지 6일간 열린다. 코로나19 확산 상황을 지켜보며 온·오프라인 방식으로 진행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지만 영화제에 참여했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다각도의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올해 영화제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신설된 경쟁 부문이다. 그동안 초청해 진행하던 방식을 달리해 단편 경선으로 작품을 공모, 제작지원을 안하는 대신, 새로운 작품과 이를 만든 새 감독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만든 것이다.
김 위원장은 지나온 10년을 발판 삼아 꾸는 꿈에 대해 밝혔다.
"제 연출 이력을 아는 분들이 영화는 안만드는지 묻더라구요. 영화제를 끌고 오며 느낀 게 영화를 하겠다는 사람은 많은데, 영화제를 하겠다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는 거죠. 모두 영화만 만들면 누가 영화를 틀까요. 그런 자리를 만들어주는 게 제 역할이고, 영화제가 할 일이죠. 앞으로 주류 미디어들에서 다뤄지지 않는 이야기를 발굴하고 세대별 여성들을 한데 묶을 거예요. 향후 10년간 더 많은 여성들이 공론의 장에서 발화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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