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불모지에 전시문화 구축 "적어도 100년 내다봤으면"

[문화공간 탐구] 노의웅미술관
2018년 수춘마을에 개관 전시장·수장고·작업실 갖춰
수익성 배제 운영 소장 작품 3000여점으로 전시 진행
제5기까지 작품…1970∼1980년대 사생작 선보일 터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0년 10월 04일(일) 18:12
(2020년 10월호 제89호=고선주 기자)광주대와 송암공단을 지나 남구 양과동을 향했다. 남구 양과동에는 전통문화연구회 ‘얼쑤’가 자리하고 있다. 문화 불모지와 같던 이곳에 미술관이 들어서기 전까지는 유일한 문화공간이었다. 한때 모든 문화예술 관련 시설이 시내로 집중됐다. 그러다 점차 문화예술 관련 시설이 곳곳으로 분화되면서 이런 시대 흐름을 반영하듯 양과동에 미술관이 들어섰다. 점차 시내만 고집할 필요는 없게 된 것이다.
그동안 양과동 일대에는 미술을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 부재했다. 음악 장르보다 훨씬 접하기 어려운 미술작품을 마음만 먹으면 마실 바람 쐬러 나가듯 외출해 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곳은 광주시에 속해있다고는 하지만 전형적인 도심 농촌에 해당하는 지역이어서 미술작품을 접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처럼 미술소외를 탈피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노의웅미술관이 그곳.
노의웅미술관은 서양화가 노의웅(77) 전 호남대 예술대학장이 사비를 들여 구축한 공간으로, 그가 관장을 맡고 있다. 2018년 11월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부지 400평에 전시장 30평, 수장고 40평, 작업실 10평, 라운지 10평 등을 구비했다. 소장 작품은 자그마치 3000여 점에 달한다.
이 3000여 점은 노 관장에게 전시와 관련한 선택의 폭을 넓혀줬다. 외지다보니 미술관을 방문할 관람객들을 위해 곳곳에 안내이정표를 설치했다. 방문하는데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하고자하는 노 관장의 세심한 배려였다.
노 관장에게 양과동은 전혀 연고가 없는 곳이었다. 원래 그는 북구 우산동 자택에서 태어나 단 한 차례도 이사를 가지 않고 머물렀다. 그와 인터뷰를 진행한 미술기자들은 한번씩은 방문했을 터다. 지대가 높지 않고, 잔디밭이 펼쳐져 있으며, 햇빛이 잘 드는 곳으로 기억됐다. 그는 그곳에서 화가로서의 삶을 구가했던 셈이다. 그러나 자택 일대가 택지개발지구로 지정되면서 그는 터전을 옮겨야만 했다.

당시 인터뷰를 할 때 그는 평생 숙원으로 미술관 개관을 언급했었다. 미술관 부지를 알아보기 위해 발품을 팔다 그나마 조건이 맞다고 판단되는 곳이 양과동 수춘마을이었다. 처음에는 너무 외곽이다보니 걱정거리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고 술회한다. 이제 개관 3년차를 맞고 있는 노의웅미술관은 양과동의 미술거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노 관장은 특이한 시도와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림을 100원에 판매한 ‘100원 특별전’을 열었는가 하면, 부인과 딸, 사위와 함께 한 ‘노의웅 한가족 6인전’, 그리고 사비를 들여 스승의 유작전을 여는 등 미술계 안팎의 관심을 모았다. 부족하지 않을 만큼의 작품 소장과 과거 여러 차례 경험한 전시 기획으로 인해 미술관은 특징적인 전시를 그치지 않고 진행 중이다.
현재 노의웅미술관에서는 노 관장이 동성중·광주상고·조선대학교 등 학창시절에 그렸던 작품들을 한데 모아 선보이는 전시를 열고 있다. 대략 그가 소장하고 있는 학창시절의 작품은 500여 점에 달한다. 보통 학창시절의 작품은 소실되기 마련이지만 노 관장은 자신의 청소년기 작품을 모두 보존하고 보관해온 것이다.
오는 12월까지 4개월간 1회에 40~50점씩 선보이는 전시에 돌입했다. 이 전시는 광주화단에서 좀처럼 열리지 않은 화가의 풋풋했던 학창시절 작품들을 접할 수 있다는데서 관심을 끌고 있다. 프로 작가로 대성하기 전 미술에 입문하는 과정을 엿볼 수 있는 기회다.
노의웅미술관은 수춘마을 골목길을 관통해야 도착할 수 있다. 그야말로 전원마을 속 미술관으로 이해하면 된다.
골목이 그다지 넓지 않아 시골 골목의 묘한 운치를 느낄 수 있다. 골목길 끝자락이라 해봐야 구부정한 것이 모두이지만 나름 정감을 마음에 담아볼 수 있을 정도는 된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도착한 노의웅미술관은 주차면과 미술관 건축물이 바로 닿아있는데다 골목길 방향에서 사진을 찍어야 해서 전경을 담아야 하는 입장에서는 다소 불편하다. 전경 전체를 담는데 공력을 발휘해야 한다. 미술관 뒤편과 주차면 끝자락에는 전봇대가 서 있어 전경을 촬영할 때 성가시기는 하다.
도착해서 미술관 쪽을 향해 서서 보면 우측은 미술관이고, 좌측은 수장고와 작업실, 라운지 등이 자리하고 있다.
전시장으로 접근하려면 계단을 올라야 한다. 그리고 미술관 제일 뒤쪽에는 안채가 자리하고 있다. 수장고에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빽빽하게 작품들이 채워져 있었다. 소장 작품은 무려 3000여 점에 달한다.
그만큼 예술가로서의 작업을 지속하지만 작품 소장 역시 남다른 신경을 써온 것이다.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매일 창작을 건너뛰는 날은 드물다. 그만큼 창작열을 발휘하고 있다. 이런 것만 봐도 한눈 팔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는 노 관장의 뚝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의웅미술관은 수입을 위해 운영하지 않고 있다. 대관 업무나 작품판매 없이 운영 중이다. 두 달에 한번씩 내부에 있는 작품을 교체한다. 노 관장과 그 가족들의 작품으로 전시를 꾸려가고 있다. 개관 이후부터 줄곧 ‘구름 천사’ 작품전을 지속해왔다.
언젠가 필자와 만났던 노 관장은 미술관을 열고 보니 신경 쓸 것도 많고, 손이 너무 많이 간다고 어려움을 실토한 바 있다. 하지만 초창기의 시행착오를 극복하고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노의웅미술관의 의미를 찾자면 개인미술관 중 수익성을 배제하고, 온전히 자신의 작품으로만 전시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진행 중인 중·고·대학생 때 작업했던 작품들을 선보이는 전시에 코로나19 여파로 관람객들의 발길이 뜸해져 아쉬움을 피력한다. 이 전시는 노의웅미술관이 전시변화를 꾀한 첫번째 시도이기도 하다.
노의웅미술관은 노 관장 자신 대(代)에 그치는 미술관이 아니라 대대손손 이어지도록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미술관을 딸과 손녀 대까지 이어가도록 하게끔 저 나름대로 해놓을 겁니다. 손녀딸 역시 미술대학을 진학해 이 미술관을 이어받기를 바라고 있죠. 이렇게 하려고 하는데는 미술관이 적어도 100년을 내다봤으면 하는 심정 때문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이 지나면 저희 미술관 인근도 시내처럼 좋아지지 않을까요."
노 관장은 자신의 회화를 제5기로 분할한다. 먼저 제1기 회화들을 선보이면서 순차적으로 제5기 작품까지를 선보일 예정이다. 내년부터는 1970년대와 1980년대 전개했던 사생 작품을 전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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