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순절 능주출신 충신 3인 배향

문화재 다시보기(화순 능주 삼충각)
정려각 3동 지어 최경회·문홍헌·조현 기려
붕어명당·기암절벽 풍광·각종 석문도 볼만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0년 12월 28일(월) 15:47

(2021년 1월호 제92호=글 여균수 기자)

화순군 능주면 잠정리 지석강변 높은 암벽 위에 3개의 소형 제각이 강물을 내려다보며 서있다. 전남도 기념물 제77호인 조선시대 정려각이다.
능주 지역에서 출생한 최경회(崔慶會)·문홍헌(文弘獻)·조현(曺顯) 등 충신 3인의 충공을 기념하기 위해 1685년(숙종 11) 능주 향교 유림들이 세운 정려각(旌閭閣)이다. 정려란 충신, 효자, 열녀들이 살던 동네에 정문을 세워 표창하는 일을 말하는 것으로, 대개 소형 제각의 형태로 조성돼 있다. 조선시대 유교적 윤리관을 강조하는 대표적 기념물이다.
최경회(1532~1593)는 1532년(중종 27) 능주에서 출생한 조선의 문신으로, 1561년 진사를 거쳐 1567년 문과에 급제했다. 영해 군수 등을 지낸 뒤에 1592년 임진왜란 때 의병을 규합해 전라좌도 의병장이 돼 금산·무주·창원·성주 등지에서 왜병을 격퇴, 전공을 세웠다.
그 공으로 경상좌도 병마절도사에 승진해 제2차 진주성 싸움에 참가, 창의사 김천일 장군과 합세해 9일 밤낮을 싸우다가 결국 성이 함락되자 투신자살했다. 문홍헌(1551~1593)은 1551년(명종 6) 능주에서 출생한 조선의 의사(義士)다. 1582년(선조 15) 진사가 됐고, 임진왜란 때 고경명과 함께 금산 전투에 참가했다. 그 후 진주성에서 최경회와 합류, 왜병과 싸우다가 성이 함락되자 최경회와 함께 남강에 투신자살했다. 조현(?~1555)은 화순군 춘양에서 출생한 조선의 무신으로, 1555년 을묘왜란 때 가리포 첨절제사로서 영암에 침입한 적을 맞아 싸우다 전사했다. 병조 참의에 추증되고 능주의 포충사에 제향됐다.
일반적으로 3명을 동시에 봉안할 경우 정려각은 대부분 3칸 규모 1개 동으로 건립해 함께 배양하는데 반해 이곳 삼충각 정려각은 3명을 별도 건물로 지어 각각 봉안하고 있다.
3개의 동 모두 거의 비슷한 구조인데,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집이다. 정면에서 바라 볼 때 맨 왼쪽 각이 최경회, 가운데가 조현, 오른쪽이 문홍헌을 기리고 있다. 내부에는 비가 없이 정려 현판만 걸려 있다. 건물 4면에는 모두 홍살이 꽂혀 있는데, 홍살은 보통 경배와 함께 성스러움을 뜻하는 상징적인 장식 부재이다. 3동 모두 처마 높이가 120~160m 정도로 매우 낮고 건물 또한 단순하다.
1685년 건립 이후 위치나 형태 등 큰 변화 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지금도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삼충각 아래 암벽에는 많은 석문에 새겨져 있다. 석문 중에는 3명의 충신 외에도 삼충각을 지나는 도로 축조에 공을 세운 사람들의 이름도 발견되는데, 옛날엔 이곳이 능주의 관문이었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높은 암벽과 삼충각, 지석강이 만들어 내는 풍광이 무척 아름답다. 삼충각 바로 앞 지석강은 붕어명당으로도 유명해 지금도 낚시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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