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삶 응축…성찰이 앞서는 것 같아요"

광주작가(첫 시집 나란히 낸 부부시인 박현우·이효복씨)
남편 공동시집 뒤 31년만·아내 등단 후 44년만에 작품집
"고향·그리움·일상이 시 모태"…"시는 타고난 숙명같다"
박, 두번째 시집 출간 계획 이, 문예지 발표보다 창작 집중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0년 12월 28일(월) 15:56

(2021년 1월호 제92호=글 고선주 기자)

부부는 각박한 세상 한편의 시(詩)로 넘는다. 더욱이 코로나19로 세상이 닫히고 있지만 이들 부부는 시 한편으로 닫힌 세상을 열고 있다. 다만 세상에 드러내지 않았을 뿐 수십년의 시간 동안 호흡처럼 켜켜이 공중을 떠돌았을 것이다. 일상이 번잡해질수록 시는 한 걸음 달아난다. 순전히 정신적 본업인 시를 놓았더라면 좀 더 일상을 가볍게 미끄러지듯 흘러갔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정신적 본업을 그리 쉽게 끊어진 로프처럼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떨어져 나갈 수는 없을 터. 일상은 고될수록 시에 대한 갈망은 웃자랐던 것이 아닐까 싶다. 이들에게 하루 이틀의 시간이 흐른 것은 아니다.
이들은 문단에서 거의 글 쓰지 않는 작가로 이미지가 굳어졌다. 겨우 문인이라고 하는 명맥만 유지한 채 존재감 없는 작가로서의 이미지가 굳어질 무렵 이들에게 반전이 일어났다. 부부가 나란히 첫 시집을 낸 것. 주인공은 서구 풍암동에 머물며 창작을 해온 박현우·이효복 시인 부부. 이들은 1989년 부부 공동시집 ‘풀빛도 물빛도 하나로 만나’를 펴낸 바 있다. 남편인 박 시인은 전남 진도 출생으로 이후 31년만에 개인 첫 시집 ‘달이 따라오더니 내 등을 두드리곤 했다’를 최근 펴냈고, 아내인 이 시인은 전남 장성 출생으로 1976년 대학 1학년때 ‘시 문학지’에 시 ‘눈동자’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개인 첫 시집으로 무려 44년만에 ‘나를 다 가져오지 못했다’를 출간했다. 문학들 시인선 5번째권과 6번째권으로 한달새 잇따라 펴낸 것이다. 이들 부부는 1957년 생 동갑내기지만 조선대 국어국문학과 1년 선후배 사이다. 같이 교직에서 아이들을 오랜 시간 동안 가르쳐온 전직 교사부부이기도 하다.
이들 부부를 지난 12월10일 풍암동에서 만나 그간의 삶과 시문학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소감을 묻자 닮은 듯 다른 대답이 돌아왔다. 두 사람 다 글 쓰는 작업이 쉽지 않았다는데는 공감했다.
남편인 박 시인은 너무 오랜 만에 글을 접하다보니 쓰는 작업이 쉽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했다. 아내인 이 시인은 코로나19 덕을 톡톡히 봤다는 입장이다. 일상이 멈추다 보니 각종 출강 등이 줄어들어 칩거하게 되면서 시 창작을 하게 됐다고 한다.
박 시인은 그동안 삶의 흔적을 남기고 싶은 마음 때문에 제2시집을 출간했지만 과연 이것이 잘한 것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었고, 이 시인은 그동안 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시를 즐기고 노는 등 시를 가르치는데 집중, 시집 출간이 늦은 이유로 소감을 대신했다.
이어 30년과 40년을 넘어 만나게 된 각자의 시집에 대한 평을 부탁하자 서로 미안한 감정을 먼저 드러냈다.
"교육 현장에서 애들과 생활하다 보니까 그들에 도움이 된 시작(詩作)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아내의 시집 26, 27쪽에 실린 ‘아줌마들의 사회’를 읽다가 아내에게 너무 미안했어요. 생활이라는 미명 아래 갇혀 있었을텐데 친구들과 짬을 내 어울린 내용이더군요. 현실 아줌마들의 실상이 잘 드러나고 있었죠. 제 시에는 저를 돌아보는 시편이 많아요. 헌신적 문제 보다는 나이가 들다보니까 그동안 잊고 산 것 등 때문에 자꾸 뒤가 돌아봐지더군요. 고향이나 그리움, 일상 등이 제 시의 모태죠."(박)
"남편의 시풍은 저하고는 다릅니다. 제 시를 쭉 보다보니 남편에 대한 시는 없더군요. 남편은 저에 대한 시를 많이 쓰는데 저는 그러지 못했죠."(이)
이들 부부는 야행성이지만 남편인 박 시인은 일상이 끝난 저녁 시간에, 아내인 이 시인은 새벽 시간에 집중적으로 창작에 전념한다. 같이 시를 쓰고, 함께 교육자로서의 삶을 사는 등 닮은 점이 많지만 창작 시간 만큼은 합을 이루지 않았다. 시간이 다르다보니 시를 놓고, 대판 싸울 일도 없다고 전한다.
이들에게 시는 적어도 불화의 원인이 되고 있지는 않아 보였다. 오히려 시는 요즘들어 이들 부부를 더 단단하게 연결하는 듯 보였다.
"제 자신의 성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남에게 감동을 준다기보다는 제 자신의 성찰이 앞서는 것 같아요."(박)
"타고난 숙명같다고 생각해요. 시로 삶을 응축시킨다고 봐야죠. 어렴풋하게 어렸을 때 울음이 떠올랐고, 후에 학교에 입학해 제 마음 속에 있는 그것이 시였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이)
이들은 각각 제2시집과 첫 시집을 펴내는 데 그쳤지만 시인으로의 방향성은 그 누구보다 분명하게 각인됐다. 박 시인은 시는 많은 데 읽히는 시는 많지 않다고 전제한 뒤 난해한 시가 많아, 어렵지 않고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시를 창작할 뜻을 내비쳤다.
이 시인은 시는 결국 혼자 쓰는 것이지만 일상에서 여행하듯 소통되는 공유의 시 혹은 밥 먹듯이 생활화된 시를 강조했다. 5·18광주민중항쟁 당시 신군부의 유혈 진압을 거부한 뒤 고문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던 이준규 목포경찰서장이 이 시인의 작은 아버지다. 이번 시집에 수록된 시 ‘고하도 1, 2, 3’은 이런 집안의 배경을 시적 소재로 창작한 작품이다.
이들 부부는 더 나아가 수정되고 교열된, 그리고 각색된 시의 풍토가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워한다. 자기만의 색깔이 없어져 버린데다 비슷 비슷한 작품이 많은 것 같다는 속내 역시 드러냈다.
이들 부부는 오랜만에 돌아와 접한 문단 풍토에 대해서도 빠뜨리지 않았다. 30년 전에 한참 작가회의 사람들과 함께 어울렸을 당시, 파벌의식이 있었는데 요즘에도 파벌의식이 남아있다는 것을 목도했다. 감히 글들을 평가하려 들지 말고 서로 글을 존중하며 수시로 만나 소통, 또는 융합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박 시인은 "늦게 시작했지만 이제부터 시에서 표현했듯 바스락거리고 싶다. 올해 가을께 두번째 시집 출간을 계획 중에 있다"고, 이 시인은 "문예지 청탁을 받으면 너무 얽매이는 듯해 문예지 발표보다는 시집을 펴낼 생각"이라고 답하며 인터뷰를 갈무리했다.
남편인 박 시인의 출판기념회는 지난 12월19일에 열렸으며, 아내인 이 시인의 출판기념회는 16일 오후 4시 화순 도곡 별마당문화마을 1층 카페 첫눈에서 예정돼 있다. 이들의 합동 시화전은 지난 12월19일 개막, 오는 31일까지 ‘시가 꿈꾸는 그림 그림이 꿈꾸는 시’라는 타이틀로 8점씩 총 16점이 출품된 가운데 진행 중이다. 이번 시화전에는 김화순(회화) 김희련(회화) 전혜옥(판화·설치) 박성우(회화) 천현노(조각·설치) 홍성민(회화) 전정호(판화) 홍성민(회화) 홍성담(회화·설치) 화가의 그림이 선보이고 있다. 홍성담 민중화가는 지난 12월19일 시화전 오픈식 날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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