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이 끝난 뒤…"곱씹어 ‘생각할 거리’ 전하고파"

예술기획(광주간판예술단체를 찾아서 <47>국악그룹 ‘각인각색’)
사회 이슈·메시지 담은 공연 창작 활동 이어
‘신초영전’·‘빛고을 가얏고’ 국악뮤지컬 선봬
관객과 소통…무대 매개로 ‘논의의 장’ 열어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1년 01월 28일(목) 16:05

(2021년 2월호 제93호=글 박세라 기자)

이들의 무대를 본 관객들은 쉬이 자리를 뜨지 않는다.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들과 장면에 담긴 의미들이 진하게 여운을 남겨서다. "연주 좋네", "노래 잘 하네" 등의 단편적인 칭찬 보다 이들이 반가운 것은 막을 내린 뒤, 관객들이 던지는 질문들이다.
하나 둘 조명이 꺼진 뒤에도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관객들이 많다면,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생각할 거리’들, ‘곱씹어볼 이야기’들을 전달했다는 믿음이 있어서다.
국악그룹 ‘각인각색’(各人各色)은 메시지를 주는 공연을 선보이고픈 젊은 예술인들이 마음을 모아 활동하고 있는 단체다. 건반·드럼·베이스·대금·피리 등의 악기 파트와 배우·작가·보컬·연출 등 각 역할을 맡은 단원 8명으로 구성됐다.
각인각색은 그 이름에서도 보여지듯 분명한 ‘색’이 있는 연주그룹을 지향한다. 연주자들이 저마다 고유의 매력들을 지닌다면, 무대에서 그 빛들이 아름답게 어우러짐을 믿기 때문이다. 유태선 각인각색 대표는 이를 ‘일곱 빛깔 무지개’에 빗대 표현했다.
"무지개는 빨주노초파남보 저마다 자기 색을 뚜렷이 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빛의 속을 면밀하게 들여다보면, 일곱 가지의 색이 어우러지기 위해 그 사이 사이에 무수히 많은 색을 보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죠. 각인각색은 이처럼 각자 분명한 색을 지니지만, 자기의 색을 고집하는 게 아니라, 서로 배려하는 팀이 되자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2014년 창단 초기에는 실내악 연주 활동에 중점을 두고 2년여 활동했고, 이후에는 연주·노래·춤·연기 등을 아우르는 뮤지컬 기획·제작에 공을 들여왔다. 공연으로써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연주로 전하기에 스스로 부족함이 느껴져서 였다. 유태선 대표는 국악을 기반으로 한 뮤지컬이란 장르에 도전, 창작품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오직 음악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극’적인 것을 생각하게 됐죠. 사람이 직접 목소리로, 몸짓으로 말하는 것은 악기의 소리로만 전달됐을 때와 완전히 다른 힘을 갖더라고요. 극의 연극적 스토리는 우리네 삶과 밀접한 것들에서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2018년 작품 ‘신초영전-꿈을 향해’와 2019년 ‘신초영전-꿈엔들 잊으리오’ 등이다.
‘신초영전-꿈을 향해’는 심청전을 모티브로 한 국악뮤지컬이다. 창작품으로 처음 관객들을 만나는 만큼,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들로 풀어가고자 택했던 것이 바로 심청전 스토리다. 흥미로운 점은 심청전 하면 효가 떠오르지만, 이들의 작품 ‘신초영전’은 그렇지 않다.
"딸을 지키고자 했지만 무력했던 아버지 심봉사는 일제치하 힘없이 나라를 빼앗겼던 우리나라의 현실을 투영했고, 그런 심봉사를 구슬려 봇짐과 노잣돈마저 빼앗은 뺑덕을 기회주의자의 모습으로 그렸죠.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오직 효로서 제 의지를 꺾지 않았던 심청은 대한민국의 민초들로 표현했고요. 공연에다 진한 메시지를 넣고 싶었던 각인각색의 첫 도전을 새긴 작품이었습니다."
두 번째 작품 ‘신초영전-꿈엔들 잊으리오’ 또한 이와 결이 같다. 작품은 일제시대 수십 명의 무장 경찰들이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습격했던 6·6 사건을 다룬다. 이처럼 각인각색의 무대는 ‘흥’도 있고, ‘한’도 있다. 이처럼 감정의 기복을 넓게 다루기 위해서는 작품 배경지식에 대한 공부가 필수이다. 단원들이 시간이 날 때 마다 모여서 작품에 대해 깊이 있게 토론하는 이유다.
이렇게 공부하다가 ‘발견’하게 되는 게 다음 창작의 주제가 된다. 지난해 선보인 창작뮤지컬 ‘빛고을 가얏고’는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다. 혼란했던 시절의 근현대사를 들여다보다가 가야금 명인 성금연 선생의 삶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성금연 명인은 가야금산조를 창시한 안기옥 선생에게 산조를 배웠어요. 해방 직후 이념대립으로 어지러웠던 때, 남한에서는 민속음악을 하는 이들을 ‘빨갱이’로 몰아붙였죠. 그렇게 예술인들이 대거 월북을 하게 되고, 성 명인은 자신의 스승과 38선 위아래로 갈라지게 됩니다. 이후 그는 남한에 남아 월북한 스승을 스승이라 부르지 못하고, 민족의 아픈 시절을 견뎌야 했어요. 그러면서도 그 끝에 ‘성금연류 산조’를 꽃 피웠죠. 이 같은 파란만장한 그의 일대기를 담은 ‘빛고을 가얏고’를 지난해 11월 초연했습니다."
각인각색은 공연을 위해 많은 준비를 했지만, 객석을 텅 비워놓고 무대를 올려야만 했다. ‘코로나19’ 탓이었다. 게다가 계속해 호흡을 맞춰왔던 시립예술단 소속의 배우들이 외부공연이 금지됨에 따라 공연 10일 전 출연이 물거품이 되는 사태도 맞았다. 급하게 다른 배우들을 섭외해 진행하느라, 작품의 중요 대목들만 꼽아 선보이게 돼 아쉬움을 남겼다.
"앞으로 연출·극작의 기반을 잘 다져서, 성금연 명인의 예술·인생사를 널리 알리는 작품으로 키워나가고 싶은 생각이에요. 잘 다듬어지면 광주의 브랜드 국악창작뮤지컬로 선보이고 싶고요. 나아가 전국 순회 공연하는 날을 꿈꿉니다."
젊은 예인들이 모인 단체인 만큼 각인각색의 역할은 막중하다. 전통을 전통답게 잇는 일과, 전통에다 현대적인 감각들을 얹어내 ‘젊은 감성’과 ‘재미’를 더하는 일이 그것들이다. 오랜 시간 민족과 함께 해 온 전통을 그 후대에 전하는 것이야말로, 국악의 생명력을 잇는 일임을 각인각색은 굳게 믿는다.
이와 함께 사회적 ‘이슈’와 그들만의 ‘시선’을 작품에 담아내는 창작활동도 지속할 생각이다. 차기작 구상이 벌써 나왔는데 장르가 청소년아동극이다. 예술강사로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있는 유 대표가 학생들의 다양한 피부색을 눈여겨보게 된 게 창작의 단초가 됐다. 다문화 가정, 조선족, 고려인 등 아이들에게까지 덧씌워진 다양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의 문제를 다룰 생각이다.
다문화 아이들을 아프게 하는 부정적인 시선은 물론이고, 무심코 행해지는 과도한 관심과 친절마저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 편견의 단면임을 무대 언어로 말하고자 한다. 작품 이름 또한 ‘보통학생’이라고 정했다.
앞으로도 각인각색은 공연이 끝난 뒤, ‘생각할 거리’를 주는 작품들로 세상과 소통하고자 한다.
"공연 무대를 통해 그간 연습한 음악을 선보이는 게 아니라, 우리들의 생각을 펼쳐놓는 장으로 꾸며가고 싶어요. 각인각색의 단원들은 연주와 몸짓, 춤과 노래로 관객에게 메지시를 전하는 겁니다. 그것을 지켜 본 관객들은 또 이와 관련한 생각들을 자유롭게 표현하죠. ‘무대’를 매개로 사회·지역의 이슈를 논할까 합니다. 그것이 각인각색이 지향하는 예술적 역할이자, 가장 잘하는 일이라 믿기 때문이죠."
전라도인 admin@jl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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