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사 첫 국사인 보조국사 지눌의 사리탑

(문화재 다시보기) 순천 송광사 감로탑
지붕돌·몸돌 등 고려시대 사리탑 양식의 전형
800년 세월로 화강암 재질에 반점 문양 채색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1년 01월 28일(목) 17:14
(2021년 2월호 제93호=글 여균수 기자)

순천 송광사 매표소부터 경내 진입 도로 공사가 한창이다. 계곡 옆 도로를 넓히고 포장을 하기 위한 공사다.
스님과 신도들이 편하게 사찰을 오갈 수 있게 함이겠으나 시끄러운 공사소음과 희뿌옇게 날리는 먼지가 조용한 산사의 분위기를 흐트려놓았다. ‘무소유’에서 송광사 들어가는 길의 고즈넉함을 찬미했던 법정스님이 이 모습을 보면 뭐라고 하셨을까.
송광사는 해인사, 통도사에 더불어 우리나라 삼보사찰로, 우리나라에서 훌륭한 스님을 가장 많이 배출한 절이라 해서 승보사찰로 불린다.
일주문을 지나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송광사 제1경인 삼청교와 우화각(능허교)이 나온다. 방문객이라면 능허교에 잠시 머물며 흐르는 시냇물을 감상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정도로 주변 풍경이 아름답다.
능허교를 건너 천왕문과 해탈문, 종고루를 지나면 대웅전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대웅전 뒤 석재로 높은 단을 조성해 공간을 구별하고 있다. 이곳 설법전 오른쪽 108개 돌계단을 오르면 드디어 불일 보조국사 지눌의 감로탑을 만날 수 있다.
보조국사(1158∼1210)는 고려시대 송광사 16국사 가운데 제1세로 정혜결사를 일으킨 주인공이다. 당시 고려후기 불교계에 새로운 정신개혁 운동을 전개한 선봉자로서 한 시대의 부패한 현실을 정의롭게 이끌고자 했던 종교지도자였다.이 감로탑은 보조국사가 1210년(희종 6)에 입적하자 왕으로부터 ‘불일보조’(佛日普照)라는 시호와 ‘감로’(甘露)라는 탑호를 받았으며, 3년 뒤인 1213년(강종 2)에 탑이 세워졌다.
감로탑은 맨 아래에 2단의 정사각형 대좌를 놓고 그 위로 네귀퉁이에 각을 이룬 또 다른 대좌를 끼워 넣었는데, 이러한 형식은 매우 특이한 형식으로 평가받는다.
맨 아래 2단의 정사각형 대좌는 그 위에 있는 돌들과 석질이 다른 점으로 보아 1926년 이 탑을 해체복원하면서 새로 끼워 넣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 위에는 희미하게 연꽃무늬를 새긴 복련석이 몸돌을 받치고 있으며, 그 위에 8각의 지붕돌과 머리장식이 올려져 있다. 그 동안 송광사 경내에서 몇 차례 자리가 옮겨졌으나 지금의 위치가 원래의 자리라고 한다.
맨 아래 바닥돌을 제외하고 거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데, 특히 지붕돌의 급격한 전각과 처마의 귀솟음, 둥근 공 모양을 하고 있는 몸돌의 모습은 고려 후기의 양식적 특징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보조국사 감로탑은 지눌의 역사적 위상을 나타내고 있으면서도 고려시대 사리탑의 전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높게 평가받고 있다.
밝은 회색의 화강암으로 조성했거늘 사리탑 외형에는 반점 같은 검붉은 문양이 여기저기 보인다. 800년의 세월이 만들어낸 고색창연함의 결정체라고나 할까.
감로탑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 경내 수십개 가람의 검은 기와지붕이 만들어낸 풍경이 감탄사를 자아내게 만든다. 여균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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