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쟁은 감정을 내보이는 ‘마음의 창’이죠"

고등학교 때 아쟁 입문해 30여 년 연주 활동
전통 기반 창작 300여곡 발표·씻김굿에 매료
악보 채록·해설 작업 계획…9번째 독주회도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1년 02월 25일(목) 17:52
(2021년 3월호 제94호=글 박세라 기자)
아쟁을 쥐고 앉으면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다. 백 마디 말로 전하는 것 보다, 아쟁의 활을 움직이는 것이 더 큰 위로가 됐다. 눈짓을 주고받는 것만으로 속마음을 알아채는 오랜 친구처럼, 아쟁은 그의 감정을 내보이는 마음의 ‘창’과 같았다. 남들은 구슬프고 애달프다 여기는 아쟁 선율에서 그는 한도 찾고 흥도 찾는다. 우울하면 우울한 마음을 투영했고, 기쁘면 더 없는 즐거움을 아쟁 연주에 실었다. 30여년 아쟁 연주로 세상과 소통해 온 김선제(광주시립국악관현악단 상임수석) 아쟁 명인이 그 주인공이다.
늘 피아노 선율이 울려 퍼지던 곳에서 그는 나고 자랐다. 피아노를 전공한 어머니 덕에 음악 속에 포옥 파묻혀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처음에 그가 쥔 것은 아쟁이 아니라 바이올린 활이었다.
1987년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정식으로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귀를 사로잡는 바이올린 선율에 퐁당 빠져 있을 때, 아쟁은 우연처럼 그의 삶에 등장했다. 해금을 배우고 있던 그의 동생을 따라 국악학원에 들렀을 때 일이다. 국악기로는 동생이 어려서부터 연주하던 해금 정도에만 관심을 뒀던 그였다. 그때 아쟁을 처음 접했는데, 그 선율이 김 명인의 마음에 가 닿았다. 현악기를 다루던 감이 있었기에 얼른 아쟁 활을 쥐어보았다. 비슷한 기법으로 연주를 잇는데, 바이올린과는 또 다른 아쟁의 선율에 푹 빠지게 됐다.
"아쟁을 접하고서는 제 음악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그간 연주해봤던 많은 악기들 중에 아쟁만큼 저의 감정을 고스란히 표현해주는 것이 없었죠. 서양 악기가 악보에 따라 감정을 끌고 가는 연주를 한다면, 국악기 아쟁은 제 스스로가 감정을 컨트롤하면서 연주할 수 있겠더라고요. 어린 나이에도 그것이 너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때부터 국악기에 눈을 뜨게 된 것이죠."
양악기에서 국악기로의 전환은, 그의 동생이 결정적 요인을 제공한 셈이다. 중학교 때부터 해금 한길을 걸어온 동생 김선임씨는 현재 국악관현악단에서 해금수석으로 활동하고 있다. 남매가 한 예술단에서 현악기 수석 자리를 꿰차고 있다.
그가 꼽는 아쟁의 매력은 우리 남도의 정서와 긴밀하게 맞닿아 있음을 꼽는다. 소리가 구슬프고 애원성이 짙은데, 그 소리에 한 번 꽂히면 헤어 나올 수 없을 만큼, 마음을 움켜쥐는 무언가가 있다고 한다. 한스럽게 들리면서도 그 안에 ‘흥’이 살아 움직이고, 흥겨운 가락이 울려 퍼지는데도 ‘한’스럽게 들리는 그 미묘함. 그것이 김 명인이 여태 아쟁을 쥐는 이유일 것이다.

박종선류 아쟁산조 이수자 발표회 연주모습.

그는 박종선류 아쟁산조 이수자다. 류파의 색을 묻자, 연주를 하면 할수록 매혹적이라고 소개한다.
"짙은 한과 그 한을 뚫고 나오는 우리민족의 강인한 힘이 어우러져 예술로 승화되는 가락이죠. 연주하면 할수록 더욱 더 그 매력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박종선의 아쟁산조는 전통 아쟁 예술의 극치로서 듣는 이로 하여금 ‘소름이 끼칠 만큼 매혹적’이라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박종선류 아쟁산조는, 고 한일섭 선생으로부터 박종선에 이어지는 가락으로, 음의 색깔이 무겁고 끈끈한 것이 특징으로 꼽힌다. 오랜 시간 정진해야만 진정한 ‘멋’을 표현할 수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는 지금껏 여덟 번의 아쟁 독주회를 가졌다. 합주가 주류를 이루는 아쟁 하나로 연주회를 여는 일은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깊은 연주 내공과 자신감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터다. 2004년 6월 김 명인의 생에 첫 아쟁발표회를 열었고, 이어 ‘다성다향-아쟁의 향연’, ‘홑은가락’, ‘남도애악’(南道愛樂), ‘산조 스토리’, ‘아쟁을 위한 남도 민속 음악 스토리’ 등 다양한 주제로 꾸민 무대에서 팬들을 만났다. 2013년에는 대전 한밭국악관현악단 정기연주회에서 그는 자신이 작곡한 작품 ‘두엔데’를 협연했다. ‘두엔데’는 스페인의 구어로, ‘얼씨구!’ ‘좋다’ 등 흥을 돋우는 추임새로 이해하면 된다. 플라멩코의 리듬을 모티프로 한국적 색을 얹었는데, 이색적인 신명으로 관객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이처럼 그는 작곡 부문에서의 이력이 화려하다. 2002년 창단, 김 명인이 제2대 악장을 지낸 국악실내악단 ‘황토제’에서 첫 작곡 작품 ‘아름다운 인생’을 내놓았는데, 이를 시작으로 작곡·편곡 작품이 300개가 훨씬 넘는다. 국악관현악은 물론이고 실내악·거문고·해금 독주곡, 판소리 창극의 전곡도 도맡아 썼다.
"아무래도 작곡이나 편곡, 채보 법은 음악의 기본을 곁에서 가르쳐주신 어머니께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서양음악이론을 공부 할 수 있었고, 이를 국악에 접목, 많은 국악창작곡을 만들 수 있었죠."
그가 아쟁만큼 푹 빠져있는 게 있다. 바로 진도씻김굿이다. 김 명인은 전통예술을 하기 위해서는 꼭 진도씻김굿을 알아야 한다고 힘줘 말한다. 진도씻김굿을 모르고서는 남도음악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진도씻김굿 예능보유자인 고 박병천 선생께 가르침을 받았다. 씻김굿 음악의 즉흥성이 그의 음악관과 딱 들어맞는다.
원래 시나위 편성은 피리ㆍ젓대(전통 목관악기)ㆍ해금ㆍ장구ㆍ북ㆍ징이었지만, 남도에서는 ‘아쟁’이 더해졌다. 사람 목소리와 꼭 닮은 구슬픈 아쟁의 곡조는 이후 해금의 자리를 대체했고, 진도씻김굿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선율악기가 됐다. 김 명인은 ‘진도씻김굿에 나타나는 아쟁선율에 관한 연구’로 석사 논문을 취득할 정도로 애정이 깊다.
"진도 지역의 토속음악은 그 독특함과 음악적, 예술적 특징이 뚜렷해 연구가치가 매우 높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같은 고귀한 문화재들이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 악보 채록 작업과 더불어 가사를 알기 쉽게 푼 해설로 책 출판을 하고 싶습니다. 무형의 유산들은 ‘기록’으로 남아있어야만 미래의 전통문화예술로서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죠. 전통이 전통답게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새로운 창작의 바람도 불러일으킬 수 있고요."
앞으로 계획을 묻자, "정말 하고픈 일이 많다"고 운을 뗀다. 무엇보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줄줄이 취소해야 했던 공연 무대에 서는 게 가장 손꼽는 일이다. 우선 3월에는 전주시립국악관현악단과 아쟁 협연이 기획돼 있다. 그간의 작곡 세계를 내보이는 장이 될 전망이다. 아홉 번째 아쟁독주회도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여건이 된다면 올해 열고 싶은 마음이다.
그는 좋은 연주를 ‘정직함’에서 찾는다. 충분히 연습이 된 탄탄함을 토대로 정직하게 연주하는 것이 관객에 대한 예의라는 믿음이다. 예를 갖춘 연주는 관객에게 진심을 전할 수 있고, 그것이야말로 연주자가 음악으로 소통하는 중요 지점이라 생각한다.
"좋은 스승들께 받은 전통적인 가락을 지키면서, 그간 제가 배우고 닦았던 음악을 바탕으로 한 ‘새로움’을 아쟁 선율로 풀어내고 싶어요. 정체돼 있지 않고 늘 긍정의 방향으로 발전하는 연주자가 되는 게 저의 꿈이자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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