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고하도 전력보강’ 역사 기록

문화재 다시보기(목포 고하도 이충무공유허비)
107일간 머물며 군사훈련 군량미 비축 담아
케이블카 개통 후 전국적 관광명소로 부상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1년 02월 25일(목) 18:07

(2021년 3월호 제94호=글 여균수 기자)

목포 앞 바다에 길게 늘어서 있는 고하도는 폭포를 감싸는 천혜의 방파제이다. 과거엔 배를 타야만 갈 수 있었으나 목포대교 완공으로 승용차나 버스로도 쉽게 갈 수 있고, 목포의 관광 명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해상케이블카가 완공된 뒤에는 케이블카를 타고도 갈 수 있게 됐다.
고하도는 이순신 장군과 매우 인연이 깊은 섬이다.
"된하늬바람을 막을 만하고 배를 감추기에 아주 알맞다. 그래서 뭍에 내려 섬 안을 둘러보니, 형세가 매우 좋으므로, 진을 치고 집 지을 계획을 했다." 난중일기 정유년(1597년) 10월29일(양력 12월7일)의 기록이다. 이순신 장군이 말한 섬이 바로 고하도이다.
이순신 장군은 이듬해 2월16일 진을 옮길 때까지 107일을 고하도에서 머물렀다.
이순신은 이곳에서 군량미를 비축하고, 전선을 건조했다. 사학자들은 고하도에서 이뤄진 전력 보강이 이후 이순신 승리의 기반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충무공유허비(전남도 유형문화재 제39호)는 1722년(경종 2)에 충무공 5대손인 통제사 이봉상이 완성했다. 비의 높이는 210cm, 비의 폭은 101cm이다. 비의 내용은 정유재란 때 이순신이 군사 주둔처로 고하도를 설정하게 된 과정과 군사 훈련, 진이 1647년(인조 25)에 당곶(하당)으로 옮겨감에 따라 이순신의 유허가 소실됨을 안타깝게 여기던 통제사 오중주가 유허비 건립을 주도한 내용, 군량비 비축 등 전쟁 시 군량미의 중요성, 그리고 후임 통제사로 하여금 고하도가 진터임을 알도록 하기위해 비석을 세우게 됐다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뒷면에는 ‘숭정기원후구십오년 임인팔월’(崇禎紀元後九十五年壬寅八月)로 건립 연대가 새겨 있다.
이 비는 일제강점기에 야산에 버려져 있었던 것을 광복이 되면서 모충각을 지어 보관하고 있다. 비에는 일본 군인이 쏜 것으로 보이는 총탄 자국도 남아 있는데, 이순신이 일본에게 얼마나 위협적인 존재였는지를 알려주는 작은 사례라 할 것이다.
충무공 유적 주위에 수백년 묵은 노송이 군락을 이뤄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다.
해상케이블카 개통 이후 고하도가 목포 관광의 새로운 명물로 떠오르고 있다. 트레킹붐을 타고 목포시가 고하도에 산책로를 대대적으로 개발해 놓았다. 고하도 산책길은 두 갈래인데, 하나는 고하도 이충무공유적지에서 용머리까지 산등성을 타고 가는 용오름길(편도 2.8㎞)이다. 다른 하나는 판옥선을 큐브처럼 엇갈려 지은 고하도전망대에서 용머리까지 해안을 따라가는 데크길(편도 1㎞)이다.
산길이 험하지 않아 걸을 만하며, 특히 바다 위에 조성된 테크길은 스릴감까지 느낄 수 있었다. 여균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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