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호 제96호=글 고선주 기자)

벚꽃으로 유명한 곳인데 일단 늦었다.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준수하며 진행된 필자의 회사 주최 걷기 대회 행사가 소환돼 별 기대없이 찾았다. 예전에 온 적 있었지만 너무 오래돼 기억이 가물 가물하다. 그곳에 건립된 미술관 때문에 찾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광주에서 30여㎞ 남짓해 가는 길은 어렵지 않다. 후배에게 맡은 역할을 인계하고 근질근질한 몸을 이끌고 동구리 호수공원 탐색에 나섰다. 동구리는 동구(동개) 마을의 명칭으로, 동구는 ‘동네 입구’라는 의미다. 동개는 ‘동구 밖에’라는 의미가 축약된 말로 알려져 있다. 전남 화순의 대표적 공원 중 한 곳으로 실상 벚꽃만 유명한 것은 아니다. 벚꽃에 과몰입한 사람의 이야기일 뿐이다. 지난 4월10일 찾은 동구리 호수공원은 벚꽃 대신 철쭉이 만개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봄 뿐만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가을에는 붉게 물든 만연산 자락으로 인해 그 나름의 운치를 더해준다고 한다. 한때 동구리 호수공원 봄 축제가 있었으나 코로나19로 멈춰 버렸다.
보통 사람이라면 호수 산책로를 타고 한바퀴 도는데 20∼30분이면 족했다. 심심하지 않은 산책로로 인해 지루할 새 없었다. 호수 크기가 아담한 수준을 넘다보니 쳐다만 봐도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호수 옆 도로 방향에서 산책로를 타고 가게 되면 앉아서 쉴만한 정자도 있고, 둑방에 의지들도 설치돼 호수의 중간 쯤에서 쉬면서 당 충전을 할 수 있다. 광주의 도심 호수들과는 결이 달랐다. 답답하지 않았고, 만연산 자락이라서 지대가 높은 때문인지 맑은 공기와 시원한 바람의 느낌이 너무 좋았다. 출발한 지 얼마되지 않아 만난 포토존은 앙증맞게 꾸며져 있었다. ‘모두 다 꽃이야’라는 문구가 꽃 이미지와 함께 부착돼 있었다. 이곳이 다 꽃이라는 건지, 아니면 모든 세상 사람 중 꽃 아닌 사람 없다. 그래서 모두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의미인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두 말 틀리지 않아 보였다. 산책 도중 웰시 코기, 포메라니안, 사모예드, 말티즈 등 강아지를 만날 수 있었다. 한결같이 귀여웠다. 한눈에 봐도 견주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처음 출발했던 지점에 도착하기 전 ‘동구리호수공원에 수달이 산다구요?’라고 쓰여진 나무 합판 안내판과 만난다. 천연기념물 제330호이자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 동물인 수달이 산다는 건지, 안 산다는 건지 헷갈렸다. 하지만 수달이 1급수 물에 산다고 하니 이곳 호수공원 물이 얼마나 맑은 지 알 수 있었다. 산책로 곳곳에 체력단련 시설이 설치돼 있어 몸을 푸는데도 도움이 될 법했다.
실제 이곳이 풍경이 좋고, 공기가 깨끗하다보니 인근 화순전남대병원 암환우들이 가끔 나와 이곳에서 운동하며 건강관리를 도모한다고 한다. 그날 호수공원에서 운동을 하는 암 환우들을 볼 수 있었다. 벚꽃들은 다 졌지만 터널 같은 벚꽃길을 걸으며 번잡한 일상을 뒤로 잠시나마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더욱이 요즘 나무 데크만큼이나 많아진 덕석이 깔아진 산책로는 도보의 부담감을 줄여준다. 무릎 관절에도 도움을 주지 않을까 싶었다.
이곳에는 호수 공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만연산이 높게 솟아 있다. 호수 건너에서 보면 668m 산이지만 족히 700m는 넘어 보였다. 호수 건너에서 바라보는 만연산은 보는 것보다 더 높아 보였다. 한바퀴 돌기 전에 높은 지대에서 호수를 조망하기 위해 다산숲속 체험장으로 이동했다. 정자와 군데군데 의자, 마루가 설치돼 있었다. 일반 가정집인지, 아니면 숙소를 쓰는 것인지는 모르나 한옥의 멋진 경관을 자랑하는 곳을 지나며 잠시 안을 들여다봤다. 무엇인지는 모르나 약초를 키우는 밭도 눈에 들어왔다. 이 산길을 타기 위해 코너에 있는 집의 사나운 개의 위협을 감수해야 했고, 오르막길을 잘못 들어 고생 아닌 고생을 해야 했다. 올라갔다 다시 하산하는 것을 몇번 반복하고서야 체험장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곳은 숲 기운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래서 이곳에 숲 체험장을 만들어겠다 싶었다. 잠시 산중 의자에 몸을 걸치고 아래를 내려바보며 숨을 돌리는,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지대가 높인 쪽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늘 가슴을 뚫리게 만들곤 한다. 이곳 체험장에서 동구리호수공원을 한눈에 바라보는 조망은 올라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을 터다. 행사 중이라 마이크 소리가 메아리돼 돌아오는 듯했다. 숲 속에 잠들어있는 생명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사람은 먹고 살아야 하니까 ‘오늘의 마이크 소음에 대해 이해하라’고 마음 속으로 주문했다.
행사장 메인 무대를 지나 만연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만연사는 만연산에 있는 사찰로, 1208년(희종 4)에 선사 만연이 창건했다고 한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 나한전, 명부전, 한산전과 요사채가 있으며, 부속암자로는 선정암과 성주암이 있다. 규모가 엄청나게 크다든가 하기 보다는 아담한 절이다. 대웅전 옆 오래된 시간을 품고 있을 베롱나무 한 그루와 거기에 걸쳐진 연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베롱나무에 연등이 가지마다 열려있는 모양새다. 한참 눈을 떼지 못했다. 간혹 오래된 사찰에 가면 대웅전 등 사찰 건물에 반하기도 하지만 만연사에서는 이 베롱나무와 두군데의 장독대 행렬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눈발 날리는 겨울 베롱나무와 눈이 소담스럽게 쌓여 있는 항아리들은 또 다른 겨울 운치를 더해준다. 근데 사월에 만난 베롱나무와 항아리들 행렬은 나름 멋이 있었다. 요즘 말로 ‘멋짐 폭발’이었다. 대웅전 처마에 매달린 종은 바람에도 땅그랑 소리를 내지 않았다. 마치 소리를 잃은 듯했다. 그리고 줄이 너무 짧게 매달려 지붕 처마 끝자락 단청에 묻혀 버려 아쉬웠다. 목어가 부딪히며 울리는 소리가 잔잔한 바람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더 아래쪽으로 줄을 지금보다 더 길게 내려 묶으면 종소리가 날 것이고, 처마선을 커메라 앵글에 약간 집어넣어 하늘을 행해 셔터를 터치하면 사찰기행에서 봤던 멋진 풍경사진과 만날 수 있으련만 그렇지 못해 아쉬웠다.
절을 나와 5·18민중항쟁 사적 조형물 앞에 잠시 머물렀고, 하산하는 내내 호수공원을 바라봤다. 어느새 만연산은 민낯을 한 채 호수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이번 동구리 호수공원과 만연사를 둘러보며 마음 안에 들일만한 명소는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새삼 깨달았다. 외부의 물리적 규모보다는 마음 속 규모가 큰 것이 진정 명소라는 것을 말이다. 동구리 호수공원 일대는 정말 필자의 마음 속에서 넓은 영토를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됐다. 평화롬고 자유롭게 호숫길을 걷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여유가 읽어졌다.
호수 둑 아래 자리한 화순군립 석봉미술관에 들어 ‘코리아 연대기 김대중 전 대통령 아카이브’전(4.6∼5.2)을 관람하며 힐링은 물론, 예술적 소양까지 더할 수 있어 유익한 여정이 됐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