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의 걸음 이어…"사람 사는 정 피어나는 곳"

화제의인물(노동운동가서 책방 지기로 변신한 김미순씨)
대학시절부터 ‘노동자교육센터장’까지 30여 년 노동운동
지난 봄 산수책방 ‘꽃이피다’ 오픈…도서 1300여 권 갖춰
기후·환경·여성 공부 모임 진행…"동네 사랑방 역할하길"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1년 09월 06일(월) 17:42

(2021년 9월호 제100호=글 박세라 기자)

"기자님 여기에요" 나긋한 목소리에 돌아보니, 책방지기 김미순씨가 손짓한다. 쨍한 노랑이 매력적인 책방 앞에서 분주히 오픈 준비를 한다. 첫 손님이 오기 전 향긋한 커피 한 잔을 내려놓고, 오늘 추천할 책들을 꼽아 진열대에 각을 맞춰놓는다. 그의 익숙한 움직임이 오랜 세월 책에 포옥 파묻혀 살았구나 싶은데, 책방 문을 연 지는 이제 채 반년이 못 되었다.
이전 그의 삶과 이력이 너무나 이채롭다. 대학 시절 소위 말해 운동권에 몸을 담았다. 특별한 연유는 없었다. 그저 옳고 그름과 정의와 부정을 구별할 수 있었기에 기꺼이 한 일이다.
그렇게 노동현장에 투신한 세월이 어언 30년이다. 그런 그가 한적한 동네의 책방지기로 두 번째 인생의 막을 활짝 연 것이다.
산수책방 ‘꽃이피다’는 지난 3월 문을 오픈했다. ‘언젠간 책방을 해야지’ 하는 막연한 꿈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남공단 입구에서 ‘광주노동자교육센터’를 운영하던 그는 자꾸만 한계에 맞닥뜨렸다. 노동을 둘러싼 환경은 계속해서 변해가고 있는데, 그 내용이 정체돼 있다는 느낌을 스스로 했다. 새로운 세대들이 ‘새 막’을 열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는 게 배려로 여겨졌고, 그렇게 11년의 센터 운영을 마무리했다.
"어느 날 지나온 삶을 쭉 돌아보니, 이제 노동운동 현장에선 나의 쓸모가 다 한 게 아닐까 생각이 드는 겁니다. 나이 든 입장에서, 젊은 사람들의 의견과 지향점을 짚어내는데도 부족한 것 같고요. 그간 살아왔던 삶을 이어갈 방법에 대해 생각했어요. 그러다 책방을 구상했죠. 한 공간에서 책을 매개로 사람을 만나고,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 고민해보고 싶었죠."
이제 슬슬 시작해볼까, 책방 터를 보러 다녔다. 푸른길분수공원 가까이에 자리한 이곳을 보고 이내 마음을 빼앗겼다. 익숙한 동네가 아닌데도, 오래 살았던 것처럼 편안했다. 공간이 정해지자, 일은 일사천리로 착착 진행됐고 계획보다 훨씬 빠르게 책방지기로 변신할 수 있었다.
산수책방 ‘꽃이피다’는 독립서점과 북 카페를 겸한다. ‘꽃이피다’란 책방 이름엔 저마다 사람들이 꽃처럼 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따스함이 묻어나는 원목 서가엔 사회과학·인문학·문학 등 장르별 1300권의 도서가 있다. 책방지기의 도서 ‘편식’ 탓에 인문학 보다는 문학 쪽이 강세라고. 여기다 최근 나온 젊은 작가들의 문학 작품이 주를 이루고, 그의 관심사에 맞닿아있는 페미니즘과 관련한 책이 속속 눈에 띈다.
벌써 단골들도 여럿 생겼다. 책방 오픈과 함께 단골들도 하나 둘 발걸음 한다. 거의 책방지기와 비슷하게 출근을 하는 셈이다. 이들은 하나 같이 "여기 오면 참 마음이 편안하다"고 입을 모은다. 단골들과 얼굴 마주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점심시간엔 함께 밥을 먹을 만큼 마음을 텄다. 책방은 벌써 동네의 사랑방이 다 됐다. 누군가에게 전해줄 물건이 있을 때도 ‘책방에 맡겨놓을게’ 하는 게 일상적 풍경이다.
"책방엔 ‘코디’들이 참 많아요. 이곳에 어울릴 것 같다고 인테리어 소품을 가져오는 손님들, 책방 앞 작은 텃밭에 심자고 꽃나무를 사오는 친구들, 먹을 것을 싸오는 이들까지. 책방을 함께 가꿔나가는 것이죠. 누구라도 편안하게 드나드는 공간이길 바랐는데, 그 꿈이 이뤄져 가고 있어 기뻐요."


노동자교육센터의 장에서 책방의 주인장으로. 이처럼 획기적인 ‘업’의 변화는 그의 얼굴에 확연히 드러난다. 그간 고단했던 삶의 무게를 조금은 내려놓아서인지 보는 사람마다 "얼굴 참 좋아졌다. 편안해 보인다"한다. 지금껏 자신이 어떤 모습이었기에 그런가 싶어 조심스레 물어봤더니 표정에 찌듦이 엉겨있었다는 답을 들었다고.
그는 전남대 재학시절부터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5년 총학생회 활동을 하다, 경찰 수사를 받게 되면서 고향 여수로 내려가게 된다. 부모님의 권유로 유학 준비를 했지만, 부채감과 자괴감이 들면서 오히려 "뭔가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1991년 선배들과 거리로 몰려나왔다. 그때 그가 마주한 게 시위현장에 노동자의 깃발이 없는 현실이었다. 거리로 나온 노동자들이 어디에 서서 구호를 외쳐야 하는지 헤매는 모습을 보고 ‘광주청년노동자회’를 조직했다. 그렇게 노동운동에 발을 디뎠고, 1994년 민주노총 광주지역본부가 들어설 때 힘을 보탰다. 처음엔 겁이 나서 시위대 맨 끝줄에서 살살 구호를 외던 그가, 가장 나중까지 운동의 영역에 몸을 담은 것이다.
그러면서 뒤따르는 설명들, 이를테면 ‘국가보안법 위반’이니, ‘수배’니, ‘제1호 구속’이니 하는 단어들이 치열했던 그의 삶을 대변한다.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영 어울리지 않는 센 말들이 툭툭 튀어나와 눈을 동그랗게 뜨자, 호탕하게 웃어버리는 그다.
정의와 대의를 위했던 그의 걸음들은, 이제 이곳 산수책방에서 이어진다. 그간 그의 삶이 무언가를 조직하고 적극적으로 교육함으로써 일들을 벌이는 쪽이었다면, 이곳에서의 여생은 이웃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는 일들에 집중할 생각이다.
먼저 노동, 환경, 여성과 관련한 공부모임을 꾸리는 게 그 첫걸음이다. ‘꽃이피다’에서는 현재 페미니즘 독서 동아리 ‘친절한 페미’와 기후환경을 주제로 한 ‘뭐라도 해’가 진행 중이다. 매달 한 번씩 지정된 도서를 읽고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이다. 허나 아이러니하게 아직 ‘노동’과 관련한 공부모임은 성사가 안됐다. 노동 주제 모임은 물론이고, 이후엔 책방 단골인 전남대 철학과 교수님을 주축으로, 인문학 고전읽기 강좌를 만들어볼 계획이다. 또 청년들이 모여 책을 읽고 공부할 수 있도록 공간을 내어주는 일도 구상 중이다.
그는 사람이 가진 힘을 믿는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좋은 사람들이 가진 힘 말이다. 개개인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을 집단의 힘으로는 이룰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당연히 그 이룸의 과정에서는 서로에 대한 배려와 예의, 욕심과 아집을 덜어내는 지혜 같은 게 필수 조건일 테다.
"좋은 사람들과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게 꿈이에요. 내 것 네 것 따지지 않고 같이, 함께 나누는 것이죠. 그 꿈의 첫발이 이곳 ‘꽃이피다’가 될 것 같아요. 거창한 목표나 계획 보다는, 책방에 들르면 아는 얼굴들을 만나 사는 이야기, 사회에 관한 다양한 생각들을 나누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요. ‘꽃이 피다’란 이름에 담긴 뜻처럼 사람 사는 정과 이야기들, 우리의 인생이 꽃처럼 활짝 피어나는 곳이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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