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공동체

[칼럽-무등로에서] 조성국 오월문예연구소 운영위원·시인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2년 05월 02일(월) 17:03
조성국 오월문예연구소 운영위원·시인

살아남은 자, 모두가 상주가 된 달이 온다. 왔다. 사십 년 남짓 책임자처벌과 진상 및 규명을 위해 붉은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날 선 목소리도 질러봤고, 화염병도 날려 봤다. 삭발 단식농성도 해봤다.
또 2019년 3월 11일,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이 광주지방병원에 출두했을 때, ……‘발포 명령을 인정하십니까?’ ‘광주 시민에게 사과하실 생각 없으십니까?’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그가 내뱉은 유일한 답은 ‘이거, 왜 이래?’였다. 하여 나는 분노처럼 인디언의 손도끼를 생각했다. 손목 스냅으로 가공할 회전력을 얻은, 직선에 가까운 둔각의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대머리 이마빡 한가운데 내리꽂히는 이런 불순하고 불온한 만행을 저질러 보는 기동 타격도 생각해 봤다.
여하튼 전두환은 죽었다. 돌이켜 보니 작년 11월 23일, 그가 죽었을 때 나는 그다지 놀라거나 기뻐하지도 않았던 같다. 혹자는 축배를 들었고, 혹자는 분개했지만 그 전에 빌려본 회고록을 대충 훑어본 적이 있던 터라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 명예훼손 혐의가 다분한, 윤리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숱한 일들이 그에게는 가능했던 회고록으로 미루어, 나는 그가 결코 반성하거나 사죄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던 듯하다. 정확하게는 회고록을 그렇게 쓰는 사람이라면 반성도, 사죄도 할 줄 모르는 작자임을 알고 있었다고 해야 맞겠다.
말이 잠시 엇나갔다. 정작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사방팔방 십 팔방이 다 막힌 그해 봄날, 오도 가도 못하고 ‘외로운 축제’를 벌이던 광경이었는데, 생각이 빗나갔다. 그러니까, 매년 상주가 되어 묵념하듯이. 제일 먼저 죽음으로 인해 울리는 행진곡에 귀를 닦고 나면 주변 둘레가 드맑아 보였듯이. 백모란 이팝나무에 꽃 찾아오시는 산그늘 아래 휘파람새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듯이. 그러니까, 열흘의 낮과 열흘의 밤에, 보통과 다르게 도청을 점령했던 광주의 1980년 5월 20일과 다음 날인 21일, 이틀 동안 빚어진, 순간적이었던 ‘절대 공동체’라는 뿌듯하고 충만한 감정이 가슴에 스멀거렸다.
"그곳에는 사유재산도 없었으며, 목숨도 내 것 네 것이 따로 없었고 시간 또한 흐르지 않았다. 그곳에는 중생의 모든 분별심이 사라지고 개인들은 융합되어 하나로 존재했고 공포와 환희가 하나로 얼크러졌다, 그곳은 말세의 환란이었고 동시에 인간의 감정과 이성이 새로 태어나는 태초의 혼미였다. 그런 곳은 실제로 이 땅에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있었다."(최정원, 『오월의 사회과학』, 오월의 봄, 2012, 123쪽)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획득하고 계급이 없고 죽음의 공포도 없는 시간과 공간, 그 ‘신기루 같은 날’을 체화해 버린, 외롭지만 축제였던 ‘절대 공동체’ 정신. 그때의 광주는 고립무원의 광주였지만 지금은 대한민국 전체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아가자"는 어깨 겯고 내딛는 대열의 행진곡처럼 ‘오월의 광주’가, ‘혁명의 광주’가, ‘영원한 청춘의 도시’가 금남로 광장에서 더욱 힘이 차올라 보무가 당당해진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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