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강 휘감는 물길 조망 최적의 정자

[문화재 다시보기] 나주 석관정
이진충 건립 후 함평이씨 후손 증수
당대 문객 시문편액·나루터 등 볼거리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2년 06월 09일(목) 18:30
(2022년 5월 제108호=여균수 기자)나주 죽산보에서 영산강을 따라 하류로 조금만 내려오면 석관정을 만날 수 있다. 주소는 나주시 다시면 동당리 844번지이다.
영산강 급류가 휘감아 도는 절벽 위에 터를 잡았다. 영산강을 조망하기 딱 좋은 자리에 누정을 앉힌 것이다. 석관정은 함평이씨 이진충이 1522년 무과에 장원급제하고 신영현감을 역임하다가 퇴임 후 낙향해 1530년에 세운 정자이다. 영산강 본류와 고막강 지류가 만나는 절벽 위에 세워졌으니 가히 영산강 제1일이라 할 만큼 절경이다. 석관정 바로 아래 절벽은 영산강 급류의 물결이 직접 치닫는 곳이다. 이곳에 바위가 층층으로 쌓여 막고 있어서 지금까지 유실되지 않고 정자가 강변에 존재할 수 있었다.
이처럼 절벽 아래에서 물길이 휘감아 도는 모습을 석관(石串)이라고 한다. 석관의 본래 뜻은 ‘돌을 꿰어간다’라는 것으로, 이 곳 강물의 모습을 따 정자 이름을 석관정으로 붙였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왜군들의 침략으로 폐허가 된 것을 1755년에 이진충의 8세손인 양무원종공신 공조참판 이시창이 중건했다.
‘석관정기’에 따르면 1755년에 이시창이 초가 두 칸을 세웠다. 1906년 14세손인 춘헌의 출연으로 후손 돈학 목헌등이 함께 중건하고, 1937년에 중수했다. 1998년 정면 2간·측면 2간 석조8작 골기와 지붕으로 중건 ‘석관정기’를 비롯한 기문과 시문을 적은 현판들을 석관정에 내걸었다.
함평이씨 족보에 이시창의 호가 수면당(水面堂)으로 기록돼 있고 살아생전 석관(石串)을 호로 사용한 것으로 보아 이시창이 영산강과 석관정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과거 영산강은 철 따라 농어나 숭어, 장어 등이 많이 나 이른바 술 안주를 잡아 올릴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그러니 강변에 누정을 지은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을 것이다. 몽탄강(무안 승달산 앞을 흐르는 영산강을 인근 주민들은 몽탄강이라 부름)의 식영정과 회진의 기오정, 그리고 석관정이 모두 영산강의 아름다움과 술 안주 때문에 지어진 정자들이다.
하지만 목포 하구언이 축조된 뒤 물길을 막아버림으로써 영산강의 어팔진미(魚八珍味 참게, 숭어, 뱅어, 웅어, 잉어, 자라, 장어, 복어)는 이제 전설일 뿐이다. 더욱이 막힌 강물은 5급수로 전락하고 매년 녹조로 몸살을 앓다보니 누정에서 바라보는 정취도 많이 손상되고 말았다.
식영정 절벽에 붙어있는 조개껍데기만이 과거 이곳까지 바닷물이 올라왔음을 증명하고 있다.
석관정 내부에는 최광언, 장헌주, 기계상, 이탁헌, 이계우, 이광헌, 이재근, 문창규, 이영범, 이광남, 이목헌 등 당대 문객들의 시문을 새긴 편액이 즐비하게 걸려 있다석관정 주변에는 붉게 핀 동백나무 꽃과 100년이 족히 넘었을 고목들이 감싸고 있다. 석관정 아래에는 황포돛배가 오가던 옛 나루터를 복원해 놓았다. 지금도 관광선 황포돛배가 잠시 머무르는 곳이다. 나루터 주변에 나무데크를 설치해 관광객들이 편하게 걸을 수 있도록 했다. 멀리 상류 오른쪽으로 드라마 주몽 촬영장도 보였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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