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조창 방어 위해 수군만호 배치

[문화재 다시보기] 영광 법성진성과 숲쟁이
굴비와 함께 항구 역사성 상징하는 방어성벽
석성 조성때 심은 수령 500년 수십그루 장관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2년 07월 06일(수) 16:47
(2022년 6월 제109호=여균수 기자)영광 법성포에 들어서면 갯벌이 드러나 보이는 포구와 즐비하게 늘어선 굴비집, 그리고 멀리 산등성이를 감싸고 있는 일련의 숲이 눈길을 잡는다.
법성포 하면 굴비를 떠올리지만 법성포는 삼국시대에 중국과의 문물이 왕래하고 고려시대에는 조창이 개설되는 등 역사적으로 서해의 중요한 항구였다.
조창이란 각 지방에서 조세 명목으로 납부한 미곡을 수납하고 경창(京倉)으로 운송하기 위해 포구에 설치한 국영 창고를 말한다.
전남에는 법성창과 함께 나주 해육창, 영암 장흥창, 승주 해룡창 등 4곳의 조창이 있었는데, 법성창은 조선 초기에 들어 영산창과 함께 전라도 2대 조창으로 명성이 높았다.
법성조창 관할에 속한 고을은 영광, 흥덕, 부안, 함평, 무장, 장성, 정읍, 고부, 고창, 옥과, 담양, 진원, 창평, 순창, 곡성 등 15개였다. 이곳 창고 방어를 위해 진량진 수군만호를 배치했는데, 군사가 1344명에 달했다고 한다.
삼국시대부터 중국, 일본과의 해상 교통로였던 법성은 15개 고을의 곡식이 모여들 뿐만 아니라 칠산 앞바다에 조기잡이 파시가 서는 등 사람들의 왕래가 많고 먹거리가 풍부한 곳이었다. 1895년에는 민호가 715호나 돼 영광읍보다 큰 동네를 이뤘다고 기록돼 있다.
조창을 지키기 위해 조성한 것이 바로 법성진성이다. 조선 중종 9년(1514) 축조된 법성진성은 돌로 쌓은 석성으로, 동서 너비 약 200m, 잔존 최대높이 300㎝ 내외, 성벽의 너비 700㎝ 내외의 규모이다.
법성진성 성벽의 잔존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동벽은 북쪽의 성벽이 잘 남아 있으며, 동벽과 북벽이 만나는 모서리부분은 통신사 중계탑이 설치되면서 일부 파괴됐다. 성 안에서는 조선시대에 사용된 기와류·자기류·토기류 등의 유물이 발견됐다.
원래 성안에는 향교와 3개의 문루(동문·서문·홍문)와 동조루(조세검사장), 군기고, 진창, 환상고, 조복고, 빙허정, 복고창(현 파출소), 군기창 등이 있었다고 하나 동학, 임란 등 숱한 난을 겪어오는 동안 불타버리고 남은 것이라고는 진내리 마을 뒤를 두른 성 흔적과 선창가 군기고 지붕과 샘 2개 뿐이다.
성벽에는 성을 쌓기 위해 동원된 전라도 인근 군현명과 쌓은 척(尺), 그리고 감독관 등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눈길을 끈다.
명승 제22호인 법성진 숲쟁이는 바로 법성진성을 축조할 때 심은 나무가 500년 동안 거목으로 자라 숲을 이룬 것이다.
법성진 숲쟁이의 ‘쟁이’란 재, 즉 성(城)이라는 뜻으로 숲으로 된 성을 뜻하며 포구와 마을을 보호하는 방풍림의 역할을 한다. 이 숲은 법성진성, 포구와 어우러져 매우 특별하고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고 있다. 매년 단오절이면 민속행사가 이어지는 등 역사적·문화사적으로 가치가 매우 뛰어난 명승지이다.
길이는 법성에서 홍농으로 넘어가는 산허리 능선을 따라 약 300m에 이르고, 종류는 느티나무와 개어서나무, 팽나무 등이며 느티나무가 전체의 90%를 차지한다. 숲쟁이 그늘 밑으로 법성진 성벽을 따라 걷는 기분이 너무 상쾌하다. 멀리 내려다 보이는 법성포구의 모습도 한폭의 그림이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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