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작가 키우자는 생각 제 경험이 보탬되길" [화제의 문화인물]재일교포 하정웅 광주시립미술관 명예관장 전라도인 admin@jldin.co.kr |
2023년 05월 10일(수) 14:04 |
|
|
영암 출신 이주노동자의 후세인 재일교포 사업가이자 미술품 수집가인 하정웅 광주시립미술관 명예관장(84·일본 사이타마현 가와구치시)이 ‘빛2023-위상의 변주’라는 타이틀로 지난 3월28일 개막, 오는 7월16일까지 하정웅미술관 제1~5전시실에서 열리는 ‘제23회 하정웅청년작가초대전’에 맞춰 3월28일 오전 미술관에서 전시 투어 후 가진 인터뷰를 통해 이처럼 소감을 밝혔다.
그동안 6년 전 신장 수술을 하는 등 건강이 좋지 않은데다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5년 만에 이번 청년작가초대전에 부인 윤창자씨, 장녀 하우묘씨와 함께 광주에 온 하정웅 명예관장은 2018년에 참여한 이후 5년 만에 광주에서 열리는 ‘빛2023’전을 맞이한 감회와 광주에 대한 인연 등을 차분하게 들려주면서 같은 달 30일 오후 3시 영암하정웅미술관에서 열린 작품 800여 점에 대한 기증식 때문에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부득이하게 한국에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건강상 국내 활동 보다는 광주·전남에 머물며 추후 일정들을 소화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하 명예관장은 당시 ‘제23회 하정웅청년작가초대전’에 출품한 작가들(대구 강원제·광주 유지원·부산 김덕희·전북 안준영)을 만나고 싶다고 밝히면서 자신이 광주에 대거 기증하는 것을 주변에서 단 1명도 찬성하지 않고 ‘왜 광주에 하냐’고 물었다고 술회했다. 당시 광주시가 기증을 위한 노력을 많이 했다는 점 또한 잊지 않았다.
“1993년 광주시립미술관이 생기면서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제가 광주에 왜 기증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저는 그 사람들에게 광주에 기증하겠다고 말했어요. 다행히 광주에 기증한 이후 지방에 여러 미술관이 문을 여는 계기가 됐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등에서 기증을 요청해 왔으나 지방의 경우 유지조차 어렵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지방을 봤는데 마침 광주에서 기증 요청이 와 광주를 도와주자 마음 먹었죠.”
그는 광주에서는 고 오승윤 작가(전 전남대 교수)와 동갑이고 친구 사이로 지낸 인연이 있었는데 광주가 문화도시를 만들어야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기증사업을 시작하게 됐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광주의 실정을 알게 돼 광주시립미술관을 도와 주게 된 것이 사명같았다고 회고했다.
광주 못지않게 애착을 가지고 영암에도 기증을 해온 하 명예관장은 처음에는 영암에서는 기증 이야기가 없었지만 고 김일태 군수시절 다른 도시에만 기증할 것이 아니라 부친 고향이니 만큼 영암에도 기증하면 미술관을 건립하겠다는 제안을 해와 기증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
하 명예관장은 10만여 점의 작품 기증을 평생의 목표로 하고 있지만 국내 10곳과 일본 3곳에 현재까지 1만2000여 점 기증을 실천했다. 자신으로 인해 기증자가 많이 생겼다는 점 또한 들려줬다. 그 사례로 하정웅콜렉션이 처음에는 90% 이상이 자신의 기증 작품으로 이뤄졌지만 현재 다른 기증 작품이 50%에 이르고 있다고 했다.
그는 1982년 처음으로 평남 안주 출신 재일교포 작가 전화황(1909~1996)을 도쿄와 교토, 서울, 대구, 광주(남도예술회관) 등 다섯 군데에서 사비를 들여 전시를 진행했는데 당시 선보였던 작품 전부를 광주시립미술관에 기증했다는 설명이다.
하 명예관장은 일본 히가시오사카(東大阪)시 출생으로아키타(秋田)현에서 성장했다. 그가 성장한 아키타에는 일본에서 수심이 제일 깊은 다자와 호수가 있는데 이곳 댐공사 등에 한국과 중국인 강제징용자들이 많이 동원돼 노동 착취와 인권 탄압을 자행했다. 자신의 부친 역시 이곳에서 징용을 당하다보니 처음에는 작품 수집이 아니라 진상규명에 온힘을 다하다 작품 수집으로 기울었으며, 그곳에서 기도의 미술관을 추진했는데 그것이 안돼 결국 광주에 기증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프랑스 초대 문화부장관을 지낸 앙드레 말로(1901~1976)의 ‘예술은 사람을 만들고 국가를 만든다. 그렇기에 봉사를 하라’는 문장을 인용, 예술 및 봉사의 중요성을 설파하면서 청년작가들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언급했다.
“젊은 작가들에게는 기회가 많이 없으니 이들을 키우고 등장할 수 있도록 하자는 생각을 했어요. 광주가 ‘빛광’자잖아요. 광주가 빛을 주면 이들이 빛을 받고, 다시 광주가 빛을 받기를 바랐죠. 그게 청년 작가전의 모티브가 됐다고 보면 돼요. 이게 저는 행운이라고 인식했어요. 일생에 이 런 행운이 있었다는 것을 시민들이 알아줬으면 합니다.”
아울러 자신의 철학인 ‘명력력 노당당’(明歷歷 露堂堂)을 들려줬다. ‘명력력 노당당’은 무슨 일이든 밝게 당당하게 드러나는 경지다. ‘좋은 일을 하면 응당 좋은 일이 생기고, 나쁜 일을 하면 나쁜 결과가 드러난다’는 뜻으로, 그가 걸어온 길을 상징한다 할 수 있다.
“좋은 일을 하면 언젠가는 꽃이 피고, 좋은 일로 나타날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믿고)실현해 왔죠. (특별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누구든지 할 수 있어요. 좋은 일은 무조건 해야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요.”
|
|
마지막으로 ‘마무리하고 싶은 숙원 과제는 무엇인가’라고 묻자 경험의 공유라고 답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체력이 약해지고 눈도 나빠져 활동력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기억력이 더 나빠지기 전에 후대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해서 젊은 인재에게 제 경험이 보탬이 되기를 바라죠. 이 세상 평화를 만들어줬으면 합니다. 기억력이 있는 한 젊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요.”
하정웅 명예관장은 지난 3월25일 광주를 찾은 뒤 같은 달 27일 하정웅아트홀이 자리하고 있는 광주교대 방문과 28일 오후 4시30분 ‘빛2023’전 개막식에 참여한 데 이어 30일 오후 3시 영암 하정웅미술관(총 4600여 점 기증) 작품 기증식 참여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친 뒤 4월3일 일본으로 돌아갔다.
‘제23회 하정웅청년작가초대전’은 지난 3월28일 개막, 오는 7월16일까지 하정웅미술관 제1~5전시실에서 ‘빛2023-위상의 변주’라는 타이틀로 열리고 있다. 이번 하정웅청년작가초대전에는 강원제(대구), 유지원(광주), 김덕희(부산), 안준영(전북) 등 4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지역 대표 공립미술관의 추천과 세미나를 통해 결정된 바 있다. 각기 다른 주제와 소재로 작업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이지만, 이들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큰 주제인 ‘위상의 변주’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작가들의 작품에는 각각 다른 키워드의 이분법적인 대립이 존재한다. 이 대립은 모두 대척점(antipode)에 위치해 반대의 모습인 듯 보이지만, 따로 분리할 수 없이 하나로 연결돼 있다.
강원제 작가는 회화의 완성과 미완성, 완결된 이미지와 그리는 행위 등의 대립, 유지원 작가는 삶의 터전과 폐허의 대비, 쾌적한 도시의 삶 이면의 소외와 파괴를 보여주고, 김덕희 작가는 물질과 에너지, 밤과 낮, 혼돈과 질서의 순환을 보여주며, 안준영 작가는 물리적 층위의 몸과 추상적 층위의 정신 사이의 관계를 이야기한다.
이중 유지원 작가는 프랑스 유학 당시 버려진 잔해들, 속수무책으로 방치된 것들에 이끌려 ‘예술가의 여정’(2015) 영상 작업을 진행했고, 이는 이후 작업에 큰 영향을 미친다. 작가는 줍는 행위를 통해 항상 새로운 것을 좇는 현대인의 모습을 조명하며, 안준영 작가는 가는 펜으로 면밀하고 단단하게 그리는 가운데 강박적인 세부 묘사를 통해 주관적인 고통을 날 것으로 직접 제시하기보다 사실적이지만 은유적으로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