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트가 맺어준 40년 인연 “함께 무대 설 때 행복해요”

[화제의 예술인]부부 플루티스트 변성호·배혜경
광신대 음악학과 교수 후학 양성 심혈…온가족 음악 한 길
2005년 그레이스 플루트 앙상블 창단 매년 정기연주회 선봬
지역 플루트 2세대…“클래식 저변 확대 사명이자 목표” 밝혀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3년 09월 21일(목) 17:51
(2023 8월 123호=글 김민빈 기자) 경쾌하면서도 부드럽고, 우아하면서도 맑고 평온한 느낌을 주는 플루트. 눈을 가만히 감고 감상하고 있노라면 산새가 지저귀는 평화로운 숲 속을 걸어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러한 플루트를 40여 년 동안 함께 연주해온 부부가 있다. 마주 보며 웃는 모습이 서로를 꼭 닮은 변성호·배혜경 플루티스트다.
부부는 그야말로 예술이 살아 숨 쉬는 삶을 살고 있다. 음악으로 처음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지금까지 음악 안에서 가정을 이뤄 살아간다. 큰딸과 막내딸은 플루트를 전공해 연주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둘째 아들은 서양 타악기를 전공하고 있다.
직업도 직장도 같은 이 부부는 현재 플루트 연주자로 다양한 무대에 서는 한편 광신대 음악학부 학부장과 초빙교수로 후학 양성에 사명감을 갖고 임하고 있다. 이런 두 사람의 인연은 고등학생 때 시작됐다. 같은 은사(황성규 전 전남대 교수)에게 플루트를 배우면서다.
“저는 중3때, 남편은 고2때 플루트를 시작했는데 같은 선생님께 레슨을 받았어요. 서울로 레슨을 함께 다니기도 하고 자주 보면서 가까워졌죠. 그렇게 8년을 친구처럼 지내다 부부가 됐습니다.”(배혜경)
악기를 전공하는 것이 흔치 않았던 시절, 플루트를 배우는 길이 쉽지만은 않았다. 부모님이 목사였던 두 사람은 경제적으로 집안이 여유롭지 못했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레슨비를 마련했다. 광주에 플루트를 배울 선생님이 없어 서울로 레슨을 받으러 다니곤 했다.
각자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한 후에는 음악의 꿈을 안고 함께 독일로 유학을 떠났고 부퍼탈(WUPPERTAL)국립음악대학교에서 공부했다. 변 교수는 네덜란드 마스티리히트 국립음악원에서 최고 연주자 과정을 밟았으며, 배 교수는 목포시립교향악단 단원으로 국내 활동을 이어갔다. 도쿄 프라임필하모니오케스트라와 우크라이나 국립오케스트라, 목포시향 등과 다수 협연하는 등 국내외 여러 무대에서 연주자로 활약했다.
변 교수는 2017년 일본국제플루트컨벤션 초청지휘, 2018년과 2019년 아시아플루트연맹 초청지휘를 맡았으며, 2019년 크로스오버솔로음반 ‘All for you’를 발매하는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해왔다.
이런 부부에게는 가장 큰 자랑거리인 세 자녀가 있다. 큰 딸 변예은씨는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촉망받는 연주자로 무대에 서고 있다. 서양 타악기를 전공한 둘째 변재민씨와 플루트를 전공한 막내 변예지씨는 현재 전남대에 재학 중이다. 플루티스트인 부부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자녀들의 삶에 음악이 스며들었다.
“악기를 일부러 시킨 적은 없는데 부모님이 매일 플루트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자라면서 자연스레 음악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제가 만삭 때까지 무대에 올라 연주를 했거든요.”(배혜경)
공연을 마치고 찍은 가족 사진

아들을 제외하면 네 사람이 같은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부부가 말하는 첫째는 완벽주의자에 가깝다. 되지 않으면 될 때까지 해내는 성실한 모습과 재능에 부모로서 놀랍고 대견한 한편, 같은 연주자로서 부럽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막내딸은 훨씬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표현했다. 해야 할 것은 하지만 정해진 것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분방하고 통통 튀는 성격이 매력이다.
“첫째는 독한 면이 있는 연주자예요. 어렸을 때 새벽에 서울로 한예종 예비학교를 갔다 밤늦게 집에 돌아오면 또 새벽까지 연습을 하곤 했죠. 이제 연습 좀 그만하고 잠 좀 자라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셋째는 ‘필’이 꽂히면 열정적으로 파고드는 좀 더 자유로운 성격이랄까요. 자녀들이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 그저 뿌듯하고 자랑스럽죠.”(변성호)
근면성실한 첫째의 면모는 엄마를 닮았다. 아직도 현역 때처럼 매일 플루트를 손에서 놓지 않고, 연습하는 배혜경 교수에게 삼남매는 ‘엄마처럼 연습하는 연주자를 지금까지 못 봤다’고 말하곤 한다.
“예전엔 그러지 않았는데 요즘 들어 아이들의 연주를 보면 참 잘한다는 생각이 들고 부러운 눈으로 보게 돼요. 제가 아직도 매일 연습하는 이유는 퇴보를 막기 위해서예요. 나이가 있다 보니 예전처럼 더 발전하기는 힘들겠지만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책임감 있는 음악인으로 남고 싶거든요.”(배혜경)
지역 플루트 2세대로 그동안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해온 부부는 설 무대가 부족한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끼다 지난 2005년 플루트 연주단체 ‘그레이스 플루트 앙상블’을 창단했다. 두 사람을 중심으로 15명의 제자들이 모여 시작한 단체는 현재 30여 명의 전문 연주자들이 활동 중이다.
“대학을 졸업한 뒤 실전 무대에 설 기회가 턱없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직접 연주단체를 꾸려 무대를 기획하고 기회를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시작했죠. 아끼는 제자들을 무대에 서게 해주고 싶었거든요. 제자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다함께 대규모 무대를 선보이기도 했습니다.”(변성호)
'재즈오케스트라 빅 밴드 콘서트'에서 가족이 함께 협연 무대에 오른 모습

단체는 창단 후 매년 정기연주회와 초청연주회, 재능기부공연 등을 통해 아름다운 무대를 꾸며왔다. 지난해 9월 유·스퀘어 문화관 금호아트홀에서 19회 정기연주회를 선보였으며, 올해는 지난 5월 광주문화재단의 월요콘서트에서 ‘사랑, 설렘, 위로 힐링 콘서트’라는 제목의 초청공연을 진행했다. 플루트 듀엣과 4중주, 5중주 등으로 프로그램을 구성, 그리그의 ‘홀베르그의 모음곡’을 시작으로 모차르트의 ‘작은 별 변주곡’, 야기사와의 ‘플루트 4중주를 위한 칵테일 파라다이스’, ‘플루트 5중주를 위한 다섯가지 표현곡’ 등을 들려줬다.
“플루트 음악이 지역에서 잘 전수되도록 하는 게 저희의 사명이자 목표라고 생각해요. 플루트 단체가 정기적으로 연주를 해야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아질 거라는 생각에 단체에 애정을 갖고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변성호)
학창시절부터 유학시절을 지나 결혼 후까지 40여년을 함께한 변성호·배혜경 부부. 누구보다 가까이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사이가 됐다. 연주자로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듀오 무대에 설 때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음악적 의견 차이로 조금 투닥거릴 때도 있지만 무대를 하고 나면 참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두 사람은 지난해 12월 ‘골드필오케스트라 제3회 정기연주회’에서 협연 무대에 서기도 했다. 치마로사의 ‘두 대의 플루트를 위한 협주곡 사장조’를 듀엣으로 들려줘 눈길을 끌었다.
플루트로 평생의 반쪽을 만난 두 사람은 자녀들과 행복한 가정을 이뤄 음악으로 세상에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플루트는 이들에게 인생 그 자체가 아닐까.
“플루트를 평생 연주해왔고 지금은 자녀들도 하고 있으니 아마 죽기 전까지 이 악기와 함께 하겠죠. 바람이 있다면 나이가 들어도 계속 무대에 서서 아름다운 선율로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를 들려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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